-항상 편지를 읽고 소중한 감상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 레터에 분량 문제로 짧게 소개하면서도 좋은 감상들을 충분히 함께 나누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해당 회차 레터에 관한 일부 의견들을 선정해 아카이빙해보고자 합니다.(이전 회차들에 대한 의견들도 조만간 아카이빙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잘 읽었다” 등의 짧은 감상 혹은 개인적인 지지의 말들도 항상 굉장히 감사하게 받아보고 있고 큰 힘이 됩니다.

-닉네임을 남겨주시지 않은 경우 ‘무명’으로 통일합니다.


👤hooon = 언제나 현상의 표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인상 깊습니다. 오늘 레터 또한 단순히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 중 무엇이 더 나은가?에 대한 의문이 아닌 근본적으로 이 질문이 왜 나왔는지, 진짜 우리가 원하는 근무의 형태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덕분에 저도 진짜로 내가 원하는 노동의 형태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최근 조승연의 탐구생활 유튜브 채널에서 행복의 조건에 대한 콘텐츠를 접했습니다. 행복의 조건에는 크게 세 가지, 유능감, 연결성, 자율성이 있다고 하는데요. 각각의 조건을 따로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조건이 맞물려 충족될 때 더욱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세 가지의 조건에서 어떤 조건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XxCoUpPMHQc ++)루틴의 힘, 동경하는 롤모델을 두는 것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지적 성장은 어떻게 이뤄낼 수 있을까?, 일 잘하는 사람의 유형이라는 것이 있을까?, 인간에게는 왜 혼자있는 시간이 필요할까? 꼭 필요할까?

⏩김스피 =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레터에서는 ‘사무실’에 덧씌워진 부정적인 느낌을 조금 다른 측면에서 본다는 차원에서, 사무실이라는 공간에 초점을 맞추어보았습니다만. ‘재택근무’를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충분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 경우에는 지금의 직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사무실을 벗어나서 비교적 자유롭게 외근이 가능하다는 점이었거든요. 하지만 외근이 주는 자율성도 있지만, 한편 노동을 위한 안정적인 공간 및 자원을 마련해주는 것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더욱이 오늘날처럼 업무를 위한 개인의 많은 ‘가욋 노력’이 필요한 시대에는요.

+)제안주신 다른 주제들도 굉장히 흥미롭네요. 그간 인스피아에서 관련 주제를 다루었던 적이 있기도 한데요. 마지막 질문(’인간에게는 왜 혼자있는 시간이 필요할까?’)과 관련해서는 인스피아의 초반에 썼던 레터를 추천드립니다.(지난레터) 초반에 썼던 레터라 지금에 비해서는 분량도 많이 짧습니다만 ^^; 당시 회차에서 다루었던 책들은 ‘고독’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사이토 다카시의 <혼자있는 시간의 힘>(링크)도 가볍게 읽어보기 좋은 책입니다.

👤무명 = 안녕하세요. '해찰'이라는 단어의 용례가 궁금합니다. 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270937&pageIndex=1

⏩김스피 = ‘~에 대한 해찰’이라는 표현에 대해 문의주셨는데요. 확실히 링크의 국립국어원 측 답변대로, 해찰이라는 단어 자체가 ‘무엇에 대해 집중하지 않고, 다른 짓을 함’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에 대해 해찰하다’는 약간은 어색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엄밀히 풀자면 ‘~에 대해 집중하지 않는 상태’라는 뜻에 가까우니까요)

다만 제가 인스피아를 처음 기획할 때 ‘해찰’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역설적으로 가져와 사용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다들 같은 ‘커다란 문제’에 대해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할 때, 조금 더 딴짓하듯이 가볍고 때론 곁다리를 짚으며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때 더 색다른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차원에서였습니다. (참고 노션 페이지) 실제로 제가 ‘~에 대해’ 해찰해본다고 했을 때, 실은 ‘그것에’ 집중한다는 뉘앙스같지만 본문에서 다루는 문제는 딱히 그것’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영 딴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고요.(예를 들면 ‘길고양이 혐오’에 대한 해찰을 한다고 하면서, 정작 ‘길고양이 혐오(혹은 동물권)에 대한 책’을 다루는 게 아니라 18세기 무렵의 식자공에 대한 역사서, 일본 작가의 에세이를 다루거나요)

이런 연유로 ‘~에 대해 해찰하다’라는 표현은, 용례 차원에서 보았을 때 다소 어색한 표현인 것은 사실이지만 시적 허용 정도로 보아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관련 내용은 추후 조금 더 보완 후 노션 소개 페이지에도 각주로 추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