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편지를 읽고 소중한 감상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 레터에 분량 문제로 짧게 소개하면서도 좋은 감상들을 충분히 함께 나누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해당 회차 레터에 관한 일부 의견들을 선정해 아카이빙해보고자 합니다.(이전 회차들에 대한 의견들도 조만간 아카이빙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잘 읽었다” 등의 짧은 감상 혹은 개인적인 지지의 말들도 항상 굉장히 감사하게 받아보고 있고 큰 힘이 됩니다.
-닉네임을 남겨주시지 않은 경우 ‘익명’으로 통일합니다.
👤빛의 얼굴들 = 제가 지난 저의 책에서는 담지 못해 늘 아쉬워 하던 이야기가 하나 있었어요. 바로 '도시의 속도와 야경'에 대한 부분입니다. (저는 조명을 설계하는 디자이너이고요, 『빛의 얼굴들』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도시에서 자동차가 빼앗아간 것은 단지 ‘안전’만이 아니라, 저녁답고 아름다웠던 도시의 밤풍경이기도 하거든요. 도로 조명 설계에는 ‘균제도’라는 기준이 있습니다. 가로등이 도로를 얼마나 균일하게 비추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인데요, 이동수단의 속도가 빠를수록 이 기준이 더 엄격해집니다. 운전자의 시야에서 봤을 때 도로의 밝기가 밝았다가 어두워지는 변화가 심하면,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높은 균제도’와 ‘효율적인 조명 배치’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가로등의 높여야 하고, 빛을 옆으로 넓게 퍼트려야 하며 밝기도 많이 높여야 합니다. 보행자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볼라드 조명처럼 낮고 부드러운 빛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자동차 도로는 7~10미터 위에서 아래로 강한 빛을 내려보내야 합니다.도보를 기준으로 설계된 유럽의 도시 야경은 걸을 때 편안하고 아름답지만, 대도시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연휴에 해가 진 뒤, 차가 없는 국립현대미술관 일대를 가족과 함께 걸었는데, 어둡지만 편안한 그 분위기가 오랜만이라 정말 좋았습니다. 차가 없는 큰 공원을 걸을 때 느끼는 해방감과도 비슷했어요.) 하지만 오늘날 새로 설계되는 대부분의 도시들은 도로를 중심으로 층층이 구조를 짜고 있습니다. 2~3층 높이에서 아래를 향해 비추는 밝고 하얀 주백색 조명은 자동차를 위한 것이고, 그 옆 인도를 걷는 우리는 밤의 고요함과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빛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운전자이자 보행자인 저로서는, 야경을 보며 이따금 생각하게 됩니다. 이 도시의 주인은 누구일까? 지금까지는 빛의 관점에서만 생각해왔는데, 오늘 김스피님의 레터를 읽고 나서 그 생각의 영역이 더 확장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헤더윅의 '더 인간적인 건축' 이 좋았어요! 헤더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책을 보고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잃어버린 건축의 예술성'이라는 관점에 대해서, 르꼬르뷔지에를 비판하는 시각도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건축물의 외관은 도시의 것이라는 생각이 좋았습니다.
⏩김스피= 오! 빛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인데, 흥미로운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평소 길거리를 걸어다닐 때 그러고보니, 어떤 길은 지나치게 밝고 또 어떤 길은 지나치게 어둡다고 생각했는데, 불빛의 세기라든지 빛의 각도, 높이 등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 것이었군요. 그러고보니 어떤 공원은 밤에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하고 느긋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그것이 바로 보행자 중심의 불빛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
추천주신 책도 흥미로워보입니다! 감사드려요 🙂 좀 딴얘기일 수도 있는데(?), 그러고보니 예전에 촉감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오늘날 도시를 걸을 때 건물들이 단지 겉보기에만 지루해보이는 게 아니라 촉감 차원에서도 새로운 경험을 하기가 어려워 참 좋지 않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애초에 굳이 건물을 만지면서 다닐 일도 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좀 더 곰곰 생각하다보니, 손잡이를 잡거나, 문을 만지거나, 계단의 난간을 붙잡는 것 등도 어쩌면 촉감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모로 오늘날의 도시는 풍요로운 경험을 막는 측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나 = 깜짝 놀랄 해찰거리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중학교때에, 어떤 과목에선가 선생님께서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보여주신 일이 있어요. 외계인이 지구에 방문해, 지구인들에게 인터뷰를 청하는 내용이었는데 그들 보기에는 지구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것이 자동차여서 자동차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질문을 하는 장면이 연출됐고요. 그로부터 여러해가 흐른 지금, 도시가 너무 차 위주로 설계됐다든지 횡단보도 신호가 너무 짧아 어르신이 건너실 때에는 초조하게 지켜보게 된다든지 등의 생각이나 감정을 품어본 일은 있었지만, 애초에 살인으로 취급받던 일이 사고로 둔갑하는 과정이 있었구나, 그렇지 누군가 휘두르는 칼 앞으로 뛰어들었대도 뛰어든 사람 이전에 사람이 있는 곳에서 칼을 휘두른 사람에게 책임을 먼저 묻는게 맞지라는 생각들 하게 되네요. +)출판사 무제의 <첫여름, 완주>. 마치 라디오드라마처럼 듣기를 전제로 쓰인 소설이라는게 흥미롭습니다.
⏩김스피=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흥미로운 에피소드입니다. 자동차에 직접 인터뷰를 하`다니 ㅎㅎ 정말 만약 외계인이 오늘날 도시에 온다면 떠올릴 법한 아이디어라 재밌네요. 저 역시 지난 회차를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어쩌면 그 네글자(’차량 살인’)라고 볼 수 있을텐데요. 그동안 저도 초록불이 켜지면 부지런히 건너야지, 교통법규를 잘 지켜야지…등 보행자의 책임 위주로 도시를 봐왔는데 조금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책 추천도 감사합니다!
👤마고 = 좋았어요.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사실과 관점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5년 전쯤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요. 많이 걸어야 빨리 회복된다고 해서 산책을 자주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웬걸요. 수술 부위 통증 때문에 빨리 걸을 수도 돌발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도 없는 상태로 밖에 나가니 그야말로 '이불 밖은 위험해'가 되어버리더라고요. 특히 횡단보도가 없지만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동네 골목들은 혼자서는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공간이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으로 보행약자와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오늘 김스피 님의 글을 통해서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놀 수 없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동유럽 여행을 갔을 때 가장 신기했던 것이 보행자가 길을 건너면 차가 무조건 멈추는 것이었어요. 심지어 횡단보도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오던 차들이 정지하더군요. 심지어 트램도요.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어서 굉장히 놀라웠어요. 폰테베드라처럼 차를 완전히 없애지 않는다 해도 길을 건너는 보행자가 우선이라는 인식만 배어있어도 얼마나 많은 사고가 줄어들고 사람들이 걷는 것을 즐거워하게 될까요. 무서운 어감이지만 교통사고가 아니라 차량살인이라는 말이 되살아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스피= 수술을 받은 적이 있으시군요 😢 정말, 확실히 우리나라의 대도시는 조금이라도 ‘정상 몸상태(?)’가 아닌 사람이 걷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다못해 발이라도 삐끗해서 며칠 고생하면 차들도 잘 기다려주지 않고, 버스를 타고 내리려고 해도 위험 천만이고요…결국 누구나 나중엔 기력이 쇠할 날이 올 것이고, 언제든 아플 수 있는데 과연 ‘가장 최상의 컨디션’을 지닌 사람들만, 그것도 온갖 신경을 쓰면서 걸어다녀야 하는 도시는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보면, 대학생 때 중국의 한 대도시에 여행을 간 일이 있었는데 너무 큰 횡단보도에 신호가 우리나라의 거의 절반정도로 짧아서 거의 매번 뛰어야 했던 기억이 있어요(현지분들은 어떻게 건너시나 봤더니 사실상 그냥 신호를 거의 못/안지키시던…;; 지금은 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안그래도 우리나라 신호도 짧은데 중국에서 그 난리(?)를 쳐보니, 어쩌면 서울에서도 저는 평범하게 다녔던 건널목도 누군가에겐 굉장히 버거운 일상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은 <사고는 없다>에서도 저자가 계속 강조하는 바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기준’을 만드는 일이겠죠!
👤옥슈슈 = 나의 첫 심부름 이라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고 기분좋아졌던 기억이 떠오르는데요. 우리나라에도 '내 아이의 사생활'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가끔 아이들끼리 심부름 다녀오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답니다! 물론 일본것처럼 카메라는 멀리서 지켜보는 형태하고는 조금 다르겠지만 아이들끼리 경험하게 하는 프로도 있었다는거 말씀드려욥
⏩김스피= 오, 그렇군요!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들이 직접 심부름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아마도 정말 조마조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또 우리나라도 도시, 혹은 동네 나름이겠죠! 제 경우는 주로 다니는 집 근처에 이면도로가 정말 많고 불법주차 차량이나 큰 차들이 많이 다니는데 이런 골목을 역시 어린아이에게 혼자 걷게 하는건 어려운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때 아이들에게 조심하라고 하는 건 한계가 있고, 보행자 중심의 길을 만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