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편지를 읽고 소중한 감상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 레터에 분량 문제로 짧게 소개하면서도 좋은 감상들을 충분히 함께 나누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해당 회차 레터에 관한 일부 의견들을 선정해 아카이빙해보고자 합니다.(이전 회차들에 대한 의견들도 조만간 아카이빙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잘 읽었다” 등의 짧은 감상 혹은 개인적인 지지의 말들도 항상 굉장히 감사하게 받아보고 있고 큰 힘이 됩니다.
-닉네임을 남겨주시지 않은 경우 ‘익명’으로 통일합니다.
👤S = 엊그제 회사에서 신호와 소음에 관한 두꺼운 책(페이크와 팩트: 왜 합리적 인류는 때때로 멍청해지는가)을 빌리면서 이걸 과연 읽을 수 있을까 약간 현타가 와서, 이렇게 재미있어 보이는 거 다 읽으려 들 게 아니라 보다 목적성을 가지고 정돈된 독서를 하는 게 더 v생산적v인 것 아닌가 하며 호기심 위주의 잡식성 독서 습관을 잠시 되돌아보았는데 마침 이런 주제로 레터가 와서 신기했습니다. 산만한 독서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네요:) +)(최근 독자라 이미 다루었던 주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레터 말미 기사소개에 나온 똥망화라는 개념이 흥미롭습니다. AI 출현 이후 콘텐츠의 미래,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AI 시대의 독해력, 리터러시.. 이런 것에 대해 관해서도 한 번 다루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AI 엔진이 검색을 대체하면서, 마케팅 쪽에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 브랜드가 LLM의 답변 알고리즘에 노출되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늘고 있고 이런 컨설팅? 서비스? 를 제공하는 업체도 나온 것 같더라고요.
⏩김스피 = 오! 예전에 얼핏 SNS에서 표지와 책 설명을 스치듯 보고 재밌겠다고 생각했던 책이네요. 어느정도 목적 지향적인 독서와 잡식성 독서가 섞일 필요도 있겠죠. 제 경우엔, (일단 인스피아 쓰기가 낯설고 이상한 방식의 읽기-쓰기라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만ㅎㅎ) 사실 ‘A에대해 쓰고싶으니까 A를 읽자!’고 하고서 썼을 때보다는, 일단 뭔가를 읽다보니 A 생각이 떠올라서 쓰게 될 경우 훨씬 더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재밌더라고요! 그게 잡식성/산만한 독서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기하게도(!) 방금 피드백을 쓰러 오기 전에 - AI시대가 오면서 검색툴 구글 독점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꼭 조만간 다루어보고 싶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일단, 현재로서 제 아이디어는(아직은 막연한 정도입니다만) - AI를 검색툴로 쓴다고 했을 때도, 여전히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은 **‘검색이라는 태생적 한계’**에 대한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애초에 인터넷이나 아카이브는 기본적으로 ‘누군가가 재료를 올려둔 것’을 캐내는 것이며 누군가 정제된 데이터의 형태로 올려두지 않은 재료/혹은 검색을 통해 접근 불가능한 재료는 획득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이건 도서관도 어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질문이 뾰족할수록, 미답지일 가능성이 높고 - 이 경우 검색을 통해서는 구글이든 구글할아버지든 편하게 얻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하지만 오늘날 ‘재료’를 만드는 1차 생산자(연구자, 기자 등)의 중요성은 간과되고 있죠. 저는 이런 본질적인 한계 및 1차 생산정보를 다루는 것의 중요성은 LLM 시대에도 크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치는 않습니다. (물론 이는 대중적인/서비스 수용자 차원의 시각이라기보다는, 생산자에 가까운 시각이긴 합니다)
이상, 제가 떠든 내용이 제안주신 맥락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튼 확실히 향후 몇년 이내에 인터넷 생태계의 변화가 크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주제 제안 감사합니다.
👤크리스 = 매번 잘 읽고 있지만 피드백은 처음 남기러 올 정도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흔히들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하는데,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변화하려고 하는 자세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히틀러가 장서가에 독서매니아였다니… +)바버라 킹솔버의 '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를 추천해봐요. 지난해 뉴욕타임스 독자들이 뽑은 21세기 최고의 도서 1위를 차지한 작품이라 어떤 책일까 궁금해 읽어봤는데 미국 러스트벨트의 백인들이 느끼는 좌절감, 정부에 대한 불신,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불만 등이 어떻게 트럼프에 대한 열광적 지지로 이어지게 되는지 그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소설 자체도 너무 재미있었고요. ++)AI와 로봇의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을 노동에 대해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김스피 =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책은 저도 예전에 한번 슬쩍 봤다가, 제대로 읽은 건 근래의 일인데요. 이렇게까지(?) 히틀러가 독서에 열심인 사람인지는 몰랐었기 때문에 저도 굉장히 놀랐고, 또 책을 읽는 내내 스스로 경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주제 제안 및 책의 제안도 감사드립니다. 와, 21세기 도서 1위라니! 대단한 책이네요. 주제도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최근 정말 관심이 많은 내용이기도 하고요. 레터 마감하고나서 바로 읽어봐야겠네요😄!
👤산하 = 아주 좋았습니다. 독서하는 제 모습과 필터버블과, 최근의 우경화 등과 생각이 이어져 저는 산만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닿았네요 ㅎㅎ 독일의 극우정당 AfD에 대한 자동차 유튜버 김한용(모카) 기자의 영상을 보았는데요. 최근 우려한대로 기독교계 정당이 1당이 확실시되면서 AfD와의 연합 여부에도 관심이 갑니다. 그런(?) 정당이 10%가 넘는 지지를 받는 것도 놀랍지만, 전세계적으로 반이민 친민족 정서가 강화되면서… 남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만약 극우가 다수가 된다면, 다수의 의견이 대개 옳다라는 전제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까, 대안이 필요할까, 대안은 사민주의인가(하지만 현재의 독일에선 이것이 구식이고!) 다른 이즘이 있나, 왜 나는 우리 세대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나? 등등의 사족이 머릿속을 괴롭힙니다. 이런 생각의 정리나 아님 복잡함의 증폭(!)에 도움이 될 책이나 콘텐츠가 있을까요? 추천받고 싶습니다. +)새로운 ‘주의’는 태어날 수 있을까?
⏩김스피 = 정말 그렇죠…최근 전세계적인 극우화 경향 관련해서도 이런저런 기사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관련해서 깊이 상황을 살펴볼 만한 최근 분석 기사입니다 <세계는 가히 ‘극우 정치의 중흥기’다>) 사실 산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주 남의 일만은 아닐 수 있는 것 같기도 한 것이…최근 국내 극우파들 사이에서도 반중, 반이민 등 혐오 정서가 눈에 띱니다. 최근 괜찮은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긴 한데, 일단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링크)가 요새 좀 이목을 모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관련 문제는 아마 조만간…여력이 된다면 꼭 레터에서도 다루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련한 주제 추천도 감사합니다.
👤사학루등 = 히틀러의 책장에 대한 글이 흥미로웠습니다. 저도 이전에 악인(?)의 책장에 대해 관심가진 적이 있었거든요. 10여년전 드라마인 상속자들을 보며 주인공 김탄의 아버지(재벌기업 회장)의 서재에 책이 참 많은데 그 사람은 굉장히 오만하고 고집스럽고 이기적이거든요. 제 기억엔 그때 그 회장 서재엔 문학도 꽂혀있었던 거 같아서 문학은 읽는 사람의 인격이나 태도에 어떤 의미를 미치는지 고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혹시 영화 동주에서도 문학의 의미에 대해 동주와 몽규가 토론했던 것도 혹시 기억하실까요.) 히틀러가 문학을 읽었던들 좀 달랐을까 의문도 드네요. 얼마전 공감의 반경이라는 책을 (살짝) 읽은 적이 있는데 히틀러의 독서 방식이 아주 작은 반경안에서 이뤄졌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저도 읽는 책만 읽거든요. 기후변화가 문제라고 이야기를 하는 책과 사회적 소수자를 존중해야 한다는 책을 주로 읽지 그와 반대되는 이야기하는 책은 읽고 싶은 마음이 1도 없어요. 히틀러도 애초에 잘못된 사상을 가졌기에 그 생각을 강화하는 독서가 문제였던 것 아닐까요. 그렇지 않은 경우에서 자신의 생각을 강화하는(차별금지, 생태계보호의 필요성 등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는 것이 히틀러와 같은 결과를 낳는다고 볼 수 있을까요. 포용의 대상, 범위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김스피 = ‘악인의 책장’이라는 키워드가 흥미롭네요. 사실 마오쩌둥이나 스탈린 등 과거 역사에는 애서가로 꽤 유명한 독재자(!)들이 많습니다. 책도 결국은 (다른 형태의 메시지 등과 마찬가지로) ‘일개 텍스트’이고, 실은 우리가 유튜브를 볼 때 주의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을 읽을 때도 균형을 잡기 위해 주의해야하죠. 다만 오늘날 ‘(교양 시민(?)이 되기 위하여) 책을 읽읍시다!’라는 구호가 설득력을 얻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오늘날 책이 갖는 의미가 과거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쉬운 정보 습득을 위해선 굳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다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독단적 독서에 대한 경계는 잊지 말아야 하겠죠!
그나저나, 두번째 문단에서 말씀주신 내용도 흥미롭네요. 관련해서 제가 최근 신간 서평을 쓰느라 읽은 책이 있었는데(기타무라 유지, <사랑과 차별과 우정과 LGBTQ+ 경계와 편견을 넘어 무지를 메워 온 말들의 기록>·링크) 이 책의 마지막에 ‘불관용에 대한 관용’과 관련해서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습니다. 조금 옮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