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편지를 읽고 소중한 감상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 레터에 분량 문제로 짧게 소개하면서도 좋은 감상들을 충분히 함께 나누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해당 회차 레터에 관한 일부 의견들을 선정해 아카이빙해보고자 합니다.(이전 회차들에 대한 의견들도 조만간 아카이빙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잘 읽었다” 등의 짧은 감상 혹은 개인적인 지지의 말들도 항상 굉장히 감사하게 받아보고 있고 큰 힘이 됩니다.

-닉네임을 남겨주시지 않은 경우 ‘익명’으로 통일합니다.


👤마고 = 오늘 아침에도 가자 지구 폭격에 관한 뉴스를 보고 나왔는데 마침 인스피아에서 다뤄주셔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전쟁은 숫자놀음이 아니다,라는 말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떠올랐어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당시 우크라이나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의 [전쟁일기]를 읽을 기회가 있었어요. 아름답고 화려한 그림체로 인기가 많았다는 작가가 연필 하나만으로 급하게 써내려간 다이어리를 그대로 받아 출간한 책인데 그 사실만으로도 서글프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전쟁이 금방 끝날 것 같았는데 이렇게 오래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너무 무섭습니다. 출간 당시 출판사에서 진행한 줌 북토크에 참여했었는데 그때 부디 전쟁이 빨리 끝나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수 있길 기원해드렸던 기억이 나요. 지금 작가님은 무사히 지내고 계신지, 남편분과 어머니를 남겨두고 피난을 하셨다고 했는데 가족들과 재회하셨는지도 궁금해지고, 무엇보다 이 전쟁들이 언제 끝날지 알고 싶네요. 지루한 것은 전쟁 뉴스가 아니라 전쟁 그 자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들은 어쩜 질리지도 않고 이렇게 전쟁을 계속 하는지요.…

⏩김스피= 답답하면서도 씁쓸해지는 일입니다. 지난 레터에 이어, 오늘 보내드린 레터(’남의 일기’ 대신 써주는 사람)을 쓰면서도 실은 마음이 많이 답답했는데 - 의외로 레터를 마무리하다보니 작은 ‘희망’이 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전엔 그런 방식으로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의외로 우리의 주변에는 꼭 기자나 작가가 아니더라도 ‘남의 일기’를 대신 써주는 사람들이 아주 많더라고요! 우리가 직접 그런 일을 할 순 없을지라도(만약 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요) - 그런 사람들 및 단체들을 직간접적으로 응원, 후원을 할 수는 있겠죠.

올가 그레벤니크의 <전쟁일기>는 그러고보니 출간 당시 출간 소식을 인상적으로 살펴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저자분이 인터뷰도 진행하셨던 걸 읽었었는데(링크) 이 기사의 제목이 “다시는 ‘전쟁일기’를 쓰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점이 또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먼 발치에서나마 계속 많은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들을 읽고 관심을 가진다면 조금이나마 세상이 나아지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봅니다.

👤e말자 = 뜨끔했습니다. 전쟁 뉴스뿐만 아니라 범죄, 정치논란, 사회 갈등, 산업재해 같은 뉴스들, 더 나아가 이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까지 기피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지만 계속해서 그런 사회를 마주하며 끔찍함, 경악, 슬픔, 분노, 답답함 같은 감정이 스트레스가 되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고, 최종적으로는 그것들이 반복되면서 무뎌졌습니다. 그런데 단지 알아주는 것도 의의가 있다는 말은 완전히 새로운 시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언론과 미디어의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도 공감합니다. 오늘 레터는 더 곱씹어가며 오래 생각해야겠습니다. 좋은 글에 감사합니다.

⏩김스피= 현재같은 방식의 보도(혹은 소통)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고-나아가 무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 같습니다. 실제로 예전에 레터에서도 다루었던 <고통 구경하는 사회> 책에서도 저자는 우리가 반복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들 속에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기도 했었고요.

오늘 레터를 쓰면서도 우리가 좀 더 다른방식으로 읽고 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는 비단 ‘리터러시’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우리의 고통을 어떻게 표현하고 나누고 극복해가는가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미디어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여러모로 반성도 많이 하게 됩니다. 앞으로 우리가 덜 무력해지고, 더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좋은 보도(우리가 서로 고통을 이야기하고 듣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보겠습니다! 저 뿐 아니라 많은 작가, 기자분들도 이런 고민을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해가고 계실 거라고 믿습니다.💪

👤익명 = 전쟁이 길어지면서 무력감이 생기기도 하고, 뭔가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이 아니라 세계 정세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인식된 거 같아요. 보도도 전쟁으로 기름값이 오르고 주가가 어떻고 하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초반에 쓰여있던 것처럼 전쟁에 대한 기사를 피했는데 그동안 내가 읽었던 전쟁 기사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말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분명 초반에는 라디오에서 현지 교민 인터뷰도 들었던 기억이 나거든요(우크라이나 - 러시아 전쟁이었던 것 같긴 하지만). 레터에 쓰여진 것처럼 기자들이 죽어서도 있겠지만 뭔가 전쟁이 너무나 당연해진 것 같아서 슬프네요. 인스피아 구독하길 잘했다고 늘 생각해요. 나중에 또 읽고 싶거나 마음에 들었던 레터는 별표를 눌러두는데 인스피아의 비율이 큽니다ㅋㅋ

⏩김스피= 레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제로 연구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세계 각지의 분쟁을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세계 정세’의 차원에서 다루는 경우가 많죠. (예전에 구독하고 있던 한 경제 관련 뉴스레터에서 미얀마 내전이 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 이런 식으로 제목을 달고 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네요😭) 물론 어떤 해외 분쟁이 국내 정세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것도…중요한(필요한) 일이겠지만, 한편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중요하다고 생각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좀처럼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생각해도, 모든 사람들이 제가 겪고 있는 고통이 경제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만 고민하고 있다고 하면 많이 외로울 것 같기도 하고요.

ps.영광이네요😄 별표를 해두고 나중에 두고두고 보고 싶으실만한 글을 쓸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혜림 = 최근 <빅토리>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거제가 배경인데요. '치어리딩'으로 성장하는 소녀들과 함께, 조선소에서 파업을 벌이는 하청 노동자들이 등장합니다. 영화는 '무언가를 지키는 마음'에 대해 지속해서 말해요. 꿈과 가족, 우정과 사랑, 존엄과 자기만의 생을 지키기 위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싸우는 사람들의 얼굴이 참 반짝반짝했습니다. 그 얼굴이 뉴스 속 수많은 숫자들로 스쳐가는 비보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저도 요근래 쏟아지는 비보에 지친 나머지 '막대에 매인 채 바람이 부는 데 따라 흔들릴 뿐인 비닐봉지'처럼 제 삶도, 타인의 삶도 버려두고 살았는데요. 영화 속 반짝거리는 얼굴들을 보고 있으니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책을 읽고 영화를 보듯 누군가의 아주 구체적인 생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일은 '살아있는 모든 것은 가치 있다'라는, 점점 더 믿기 어려워지는 생의 전제를 단단한 받침돌로 세워두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전제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은 삶에 대한 애착이겠지요. 슬픔을 슬퍼할 줄 아는 선한 사람들이 멀리 있는 고통에 눈 돌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자책하지 않으며, 깊은 애착을 유지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김스피= <빅토리> 영화는 안그래도 재밌을 것 같아서 (저는 영화관에 자주 가진 못하는 편입니다만) 스크린에서 내려가기 전에 꼭 보려고 벼르던 차였는데 혜림님 말씀을 들으니 더 보고 싶어졌네요! “누군가의 아주 구체적인 생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할 수 있다는 말씀에 정말 깊이 공감합니다. 실제로 제가 지난 레터에서 다루었던 <집단학살 일기>를 읽으면서 제가 정말로 비슷한 생각을 했었거든요. 500페이지정도나 되는 ‘남의 일기(그의 삶의 구체적 장면들)’를 곰곰 읽을 기회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읽는 ‘과정’ - 그 통과하는 시간 속에 자연스럽게 타인의 삶을 감각하고 그 소중함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오늘날 점점 사람들이 “책을 안읽는다”고 할 때 - 진짜 문제는 이런 종류의 ‘체험’이 사라진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책만이 이런 구체성을 감각하게 해주는 매체는 아닙니다만 이처럼 타인의 울퉁불퉁하고 복잡한 삶의 장면을 몇시간동안이나 몰입해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사라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어쩌면 제가 책을 지팡이 삼은 해찰을 하고 있는 이유도 이런 종류의 ‘길게 바라보기(느릿하게 해찰하기)’의 가치를 지켜가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고요. 이야기를 붙이다 보니 조금 거창해진 느낌이긴 합니다만(ㅎㅎ), 말씀하신대로 앞으로도 우리가 조금 더 지치지 않는 방식으로 선의를 유지해갔으면 합니다! 세상엔 슬픈 일도 많지만 그만큼 즐거운 일도 많으니까요. (그리고 의외로 이렇게 ‘길게’ 바라볼 수록 세상에 대한 환멸보다도 즐거움과 선의를 더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