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편지를 읽고 소중한 감상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 레터에 분량 문제로 짧게 소개하면서도 좋은 감상들을 충분히 함께 나누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해당 회차 레터에 관한 일부 의견들을 선정해 아카이빙해보고자 합니다.(이전 회차들에 대한 의견들도 조만간 아카이빙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잘 읽었다” 등의 짧은 감상 혹은 개인적인 지지의 말들도 항상 굉장히 감사하게 받아보고 있고 큰 힘이 됩니다.
-닉네임을 남겨주시지 않은 경우 ‘익명’으로 통일합니다.
※알림 : 새벽에 급하게 발송하느라, 21일 발송드린 이번 회차(왜 의견이 다른 사람과 얘기하는 건 어려울까?) 마지막 글 속 한문장의 기사 링크(우하단)가 누락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래 영역에 들어갈 기사는 [한국일보] 정치인은 왜 팩트체크를 싫어하나···“비판 넘어 팩트체크 못하게 하는 건 처음”(링크) 기사입니다. 좋은 기사니 많이 읽어봐주세요!
👤발가락 = 내용 너무 좋았습니다. 돌봄노동자에 대해 관심이 많고, 그들이 자부심을 스스로 느낄 수 있게 하는 자조모임 등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특정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로서 업계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권익추구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모든 일하는 사람이 자신이 하는 일과 "능력"에 숭고함을 느낄 수 있는 발판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 널리 퍼뜨리고 싶네요.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 (세대 간 갈등, 몰이해가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윗 세대의 이야기를 찾고, 이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모든 젠더의 화해는 가능한 일일까?”
⏩김스피 =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소중한 일을 하고 계시네요. 지난 레터가 조금이나마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었으면 기쁘겠습니다 😊 저번 레터를 쓰면서 저도 새삼, 정말 소중한 능력을 가지고 이를 공동체를 위해 써주시는 분들의 덕을 알게 모르게 많이 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스스로의 능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이를 공동체를 위해 열심히 사용하고, 그만큼 존중과 적정한 임금, 노동조건을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어가야겠습니다.
추천주신 책과 이슈도 감사드립니다.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라는 책은 처음 접해보았는데 제목만 보아도 흥미로워보이네요!
👤랑동 = 항상 재미있게 보고, 감탄하였으나… 처음으로 메일을 남깁니다. (사실 그냥 이런 글을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회사를 다니며 능력과 보상에 대한 얘기들을 굉장히 많이 들어왔지만, 항상 그 능력이며 성과의 의미가 모호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알고 보면 능력인 것들이 “공인”된 평가 툴이 없을 때는 없는 것처럼 무시되기도 하고,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능력이던 것이 능력이 아닌 것이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단편(김승옥..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잘 모르겠습니다)에서 이제는 별로 각광받지 않는 너무나 힘센 장사가 그 힘을 쓸 데가 없어서 밤마다 남대문의 돌을 옮겼다가 제 자리에 돌려놓는 일을 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결국 능력이란 것은 사회의 각광을 받아야 빛이 납니다. 그러나 내부적인 그 능력이 있다면 가끔 어디선가 쓰고 싶겠죠. 가끔. (저는 사람들이 모여서 주문을 할 때 메뉴를 아주 잘 외웁니다. 20명이 모여서 주문을 해도 그것을 외워서 웨이터에게 알려줄 수 있어요. _그런데 다른 기억력은 그렇지 못합니다 _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음식점에 갔을 때 신이 나서 주문 내역을 외워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걸 정말 가끔 즐깁니다 ㅎㅎㅎ)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그 천부적인 능력의 반대편에 있는 " 노력" 을 또 우리 사회에서는 중요시 합니다. 이건 어쩌면 능력이 없다고 사람들이 아무 것도 안할까봐 걱정되서 지배계급이 이런 걸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새 블라인드에는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 외에 자신이 얼마나 삶을 희생을 했는가, 안 즐겁게 보낸 시간이 많은가를 "노력"으로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정당하다고 말하는 글이 많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변경한다고 노조 차원에서 선언했을 때 그 비정규직이 이미 십년도 더 일했는데도 사년제를 노력으로 들어온 것과 비교해서 반대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싫은 시간을 감내했던 것을 노력으로 명명하고, 그것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는 건 언뜻 합리적인 것이긴 것처럼 보이나 한편으로는 성과주의랑은 또 다른 것 같습니다. 결과가 아니라 어떤 태도에 대한 보상이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하늘이 내린 천부적인 것인 것이고, 노력은 개인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서 언뜻 반대편에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둘 다 그 시대 지배적인 사회가 선택한 능력과 노력에만 보상을 해줍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노력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일종의 능력인 것 같기도 고 또 어떤 면에서는 사회가 원하는 레벨을 위해 노력할 수 있었던 집안 환경이나 성품은 그저 운인 것 같기도 하구요. 이런 편지를 쓰는데도 횡설수설인데다가 엄청 길어지네요. 아무튼 이 레터를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여러가지를 해찰해서 이런 글을 만들어주는 능력과 노력에 존경을 보냅니다 !
⏩김스피 =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흥미로운 피드백 공유해주셔서 감사해요. 저 역시 아무래도 ‘회사원’이다보니 랑동님께서 하시는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흔히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능력이란 대체로 학벌이라든지 정형화된 성과(?-이마저도 다소 불투명한)인데, 주변을 보면 정말로 다양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주변을 즐겁게 해주고 또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하다못해 한 마디 농담을 건네는 것을 좋아하거나 멋지고 재밌는 옷을 입기를 좋아해 주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제가 다음회차를 정하지 못해 머리를 감싸안고 있는 와중에 한번씩 어깨를 치고 지나가준다거나요! 주변을 잘 보살펴주고 북돋워주는 능력을 지닌 동료들 덕분에 즐겁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능력’은 전혀 회사의 연봉협상이라든지 스펙 등과는 상관이 없지요… 그나저나 20명의 주문을 한번에 외우실 수 있는 능력이라니 어마어마하네요(😲!!!!) 저는 지난레터를 보내고 나서 무슨 능력이 있나 곰곰 생각해보았는데, 아무래도 밤을 새도 괜찮은 체력(혹은 근성)과 주변을 잘 신경쓰지 않고 눈치가 없는 무덤덤한 능력(?)이 그나마 조금 인스피아를 오래 해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나 싶긴 합니다.
👤헛개 = 내용이 어렵지 않고 흥미로워 재밌게 읽었습니다. 알찬 뉴스레터를 만들어 보내주는 김스피님의 정성을 느끼고 이 분 또한 신묘한 능력을 펼쳐주고 계시는구나 싶어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 사회에서 내 생각같지 않은 사람들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면 위로가 될 신랄한 말들이 꽤 많습니다. ++)유튜브 다음의 차세대 플랫폼은 과연 무엇일까?
⏩김스피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튜브의 차세대 플랫폼은 무엇일까요? 생성형 AI가 고도화되어 검색 및 인터넷에서 콘텐츠를 생산/소비하는 방식 자체에 큰 변경이 생기면, 많은 콘텐츠가 경유하고 모이는 ‘플랫폼’이라는 개념 자체가 흐릿해지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기도 한데요. 상황을 조금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밤빵 = 새로운 인물을 알게 되어서 뜻 깊었어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사적 제재에 대한 찬반 논란이 떠올랐어요. 구본창 대표님이 하는 행동은 법적으로 위법으로 볼 수도 있지만, 법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하였는데요. 국가에서 하지 말라고 하거나 의무로 잡아둔 것들은 내가 불이익을 당할까봐, 혹은 그 틀을 깨야 할 이유를 모른 상태로 남아있게 마련인데 가치와 본질을 생각하여 선뜻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용감하다고 느꼈습니다. +)다음에 기회 되면 사적 제재에 대해서 해찰해보면 어떨지요? 최근에 비잘란테라거나, 국민사형투표제도라던가, 제가 재미있게 소비하는 유부녀 킬러, 더 나아가 더 글로리 같은 콘텐츠까지 전부 사적 제재의 영역에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보는 사람들은 이에 크게 동감하고, 통쾌해하고 그런 것 같아요. 국가의 공권력과 사법체제에 구멍이 있기 때문일까요.
⏩김스피 = 사적 제재에 대한 내용도 흥미롭습니다. 배드파더스 인터뷰를 읽으면서도 그 주제에 대해선 크게 주목을 못해보고 있었네요. 밤빵님 말씀대로, 실은 ‘사적 제재’라는 말 자체가 약간 모호하고 흥미로운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원래는 법에 의해 정의가 실현이 되어야 할텐데(범죄 행동의 제재 등) 그것이 안된다고 판단해서 개인이 움직이는 것이니까요…그리고 그것이 ‘범법’이 되기도 하고요. (지난 레터에서 소개드렸던 배리언 프라이 역시 비시정부에 대항한 범법자이자 수배자였죠. 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분들도 그렇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