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편지를 읽고 소중한 감상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 레터에 분량 문제로 짧게 소개하면서도 좋은 감상들을 충분히 함께 나누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해당 회차 레터에 관한 일부 의견들을 선정해 아카이빙해보고자 합니다.(이전 회차들에 대한 의견들도 조만간 아카이빙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잘 읽었다” 등의 짧은 감상 혹은 개인적인 지지의 말들도 항상 굉장히 감사하게 받아보고 있고 큰 힘이 됩니다.

-닉네임을 남겨주시지 않은 경우 ‘무명’으로 통일합니다.


👤민민 = 최근 '악인의 서사' 책을 읽었는데, 마침 이 주제에 대한 뉴스레터가 나와서 반가웠습니다. 저도 그전까지는 막연히 당연히 악인에게는 서사를 주면 안 되지, 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악을 모르면 악을 비판할 수 없다. 악을 모르면 악을 알아차릴 수도 없다' 는 구절에 공감했어요. 오늘 뉴스레터를 읽으면서도 그랬고, 미화나 합리화가 아닌 악 혹은 악행을 알아가려고 하는 시도는 필요하고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악인의 서사에 대한 논란이 '악인'과 '서사'라는 개념이 주는 모호성도 있지만, 현실에서 마주하는 잘못된 악인의 서사가 너무나 많아서,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이전까지 악인의 서사에 반대했던 이유도 언론과 미디어에서 나오는 범죄자에 대한 시시콜콜한 개인정보와 이를 범죄의 이유로서 설명하려는 과정들에 거북함을 느껴서인 것 같아요. 현실의 우리들은 수 클리볼드와 같은 부모보다 그렇지 못한 부모들의 인터뷰나 기사를 훨씬 많이 접하게 되는데 이런 언론 환경 개선의 필요성도 같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현실의 범죄를 직접 다룬 서사 쪽에 집중했다고 하셨는데, 다음에는 미디어나 창작물 속 악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봐도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디어는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는 게 아닌 한)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나 폭넓은 표현이 가능한 공간이기 때문에 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개인적으로 작년에 영화 '헤어질 결심'을 재미있게 보고 친구에게 추천을 해주었다가 그 영화는 '불륜 미화' 영화라서 싫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는데 꼭 '범죄'가 아니더라도 각자가 생각하는 '악'이라는 것이 너무나 다르고 '미화'라는 것 역시 개개인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어서 여러모로 생각해볼 만한 것이 많은 주제인 것 같아요.

⏩김스피= 오 <악인의 서사>를 읽으셨군요. 저도 그 책을 흥미롭게 보았는데, 말씀해주신 내용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분명 ‘현실의 악’을 다루는 서사(보도, 논픽션) 와 ‘가상의 악’의 서사(픽션)에는 큰 차이가 있고, 후자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얘기들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만 제 경우는 일단은 “가해자의 서사도 중요하다!”라고 말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저널리즘 관행 관련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고(실제 제 주변에서도 레터의 제목을 보고서 분노해서(?) 반박하고 싶은 심정-가해자의 서사가 대체 왜 필요해!!-으로 제목을 눌렀다는 반응들이 많았거든요 ㅠㅠ), 이를 위해선 논픽션 쪽에 집중하는 것이 ‘대화의 물꼬를 트는 시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요. 말씀주신 것처럼, 언젠가 픽션 차원에서의 악을 다루어볼 기회도 있다면 좋겠습니다.

덧붙여 <헤어질 결심>과 관련해 말씀주신 내용도 흥미로웠습니다. 분명 명확한 ‘범죄(범법)’과 윤리적 ‘악’에는 차이가 있고 후자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하는 바가 크게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명 = 저는 볼링 포 콜럼바인이나 엘리펀트는 보지 못했지만, 관련한 영화로 작년에 개봉한 "매스" 추천 드립니다. 가해자의 부모와 피해자의 부모가 한 교회에 모여 대화하는 것만으로 영화가 2시간 진행되는데, 정말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습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용서가 가능하긴 한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는 부모의 마음이란 어떤 것인지, 용서하면 그것으로 정말 종결되는 것인지,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영화였습니다.

⏩김스피= 좋은 영화 추천 정말 감사드립니다! 가해자의 부모, 피해자의 부모 네명이서 대화하는 것만으로 2시간이 흐른다니… 그야말로 숨이 턱턱 막히고, 압도되는 기분일 것 같은데요. 생각할 지점이 많은 영화일 것 같습니다.

👤무명 = 변호사, 교도관, 보호관찰관 같은 분들이 '악인의 서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그런 분들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잖아요. 변호사는 범죄인의 입장에서 범죄인을 변호하고, 교도관은 범죄인과 함께 생활하고, 보호관찰관은 범죄인의 사회 생활을 관찰하니까, 그 '서사'를 잘 알지 않을까요? (실제로 어떤 일들을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무래도 범죄인의 '서사'를 본인에게 직접 들을 기회가 다른 사람보다 많지 않을까요?) 그 밖에 전문적으로 범죄인을 상담하는 심리 상담사 같은 분도 계시지 않을까요...? 그렇게 범죄인을 직접 만나 서사를 듣는 분들이, 어쩌면 어떤 면에서 범죄인의 가족이나 친구보다 '악인의 서사'를 더 잘 이해할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그런 분들이 '악인의 서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또 그런 분들이 일하면서 어떻게 생각·마음의 '균형'을 잡는지도 궁금해요. 만약 제가 범죄인의 서사를 들어야만 하는 일을 하면 어떨까 상상해 보았거든요. 자꾸 속으로 거리를 두려고 신경 쓰다가 정작 '서사'를 놓쳐서 도저히 일을 못 할 것 같기도 하고, 막상 듣다 보면 오히려 '서사'에 끌려서 동조·동정·동감하다가 일을 망칠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어떤 날은 서사를 듣고 너무 심란해서 종일 그 서사(업무) 생각만 하느라 마음 속의 '일과 삶의 균형'을 잃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일을 오래 하시는 분들이 어떤 생각과 마음과 태도로 일을 하고 삶을 사시는지도 궁금해요. 범죄자, 범죄인, 범인, 가해자, 악인 같은 용어들은 뜻이나 용례가 어떻게 다른지, 김스피 님은 이 용어들을 언제 어떤 때 어떻게 골라 쓰시는지도 궁금해요. 방금 질문을 적다 보니...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째서인지 용어마다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 들어서요...

⏩김스피= 흥미로운 지점을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역시 직접 그런 분들(범죄자의 서사를 익숙하게 들어야 하는 사람들)로부터 ‘가해자의 서사’와 관련해 깊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만, 저는 말씀을 듣고 두 갈래의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1)얼마든 가해자의 서사에 공감할 수 있다. 2)다만 거기에서 끝난다면 그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순 없다(오히려 해가 될 것이다).

우선 1)에 대해서는 결국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해자든 누구든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당연히 대체로 그의 서사에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극소수를 제외하곤 아무런 이유와 경로 없이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저는 누군가가 ‘개인적으로’ 누군가의 서사에 ‘공감’하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본능에 가깝습니다. 다만 그것이 문제가 되는 지점은, 그 서사를 ‘모두의 서사(기사, 역사 등)’로 만드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고스란히 가해자의 변명을 반영하려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또한 만약 그의 말에 대해 “응응 네 입장은 그랬구나. 아이고 참 힘들었겠다. 토닥토닥”만 하고 끝난다면 - 그 가해자가 궁극적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는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최근 많은 사람의 공분을 산 “내 아이의 손이 상대의 뺨에 맞았다”라는 발언(링크) 관련해서 생각해볼 수도 있을텐데요. 당연히 이런 발언은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온 변명이겠지만, 이 변명은 당연히 사회에선 통용될 수 없는 논리입니다. 그리고 그런식으로 무작정 감싸진 아이가 나중에 사회에서 성인이 되어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며 사회에 적응하고 ‘제대로 된 구성원’으로 살게 하기 위해선 - 오히려 그의 서사에 무작정 ‘공감’만 할 것이 아니라, 아이를 제대로 꾸짖고 균형있는 시선을 갖추도록 기르는 것이 필요하겠죠. 레터에서 다루었던 <약속된 장소에서:언더그라운드2>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질문법이 ‘까칠’해보일 순 있었겠으나, 그쪽이 그들에겐 (무작정 옴진리교를 옹호하는 것보다도) 훨씬 도움이 되는 방식의 질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이 균형은 말씀하신대로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해자, 악인, 범죄자’ 등의 용어와 관련해서는 말씀하신대로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의 처우를 고려하지 않는 경영자는 ‘악인’일 순 있겠지만, 구체적인 범죄(범법행위)를 저지르진 않았을 수 있고, 명확한 피해가 드러나지 않는 국면에선 ‘가해자’라는 말은 어색하겠죠. 지난 레터에서는 ‘악인의 서사’라는 트렌드를 소개하며 ‘가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약간 용어를 섞어서 사용하긴 했는데요. 지난 레터에서 제가 일단 주목하고 싶었던 부분은 명확한 피해자가 있는 경우의 ‘가해자’ 쪽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