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편지를 읽고 소중한 감상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 레터에 분량 문제로 짧게 소개하면서도 좋은 감상들을 충분히 함께 나누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해당 회차 레터에 관한 일부 의견들을 선정해 아카이빙해보고자 합니다.(이전 회차들에 대한 의견들도 조만간 아카이빙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잘 읽었다” 등의 짧은 감상 혹은 개인적인 지지의 말들도 항상 굉장히 감사하게 받아보고 있고 큰 힘이 됩니다.

-닉네임을 남겨주시지 않은 경우 ‘무명’으로 통일합니다.


👤엄격한여행자 =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시절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과거 실용서는 요즘의 자기개발서 같은 책과 달리 남을 이해하기 위한 것들이 많았다는 점은 이렇게 달라진 시절을 방증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감정, 내가 얻을 수 있는 이익, 내가 손해 보지 않는 법으로 점철된 최근 서가를 보면 무엇이 시대 정신인지 알수 있기도 하네요. 그래서 상식이 안 통하나 봅니다. 과거 실용서가 통하지 않는 건 기술이 달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겠네요. 집단주의가 지배했던 때 남을 의식하며 살았어야 했던 당시 시대적 배경도 있겠지만, 극단적으로 '나'로 수렴하는 현재 관점으로 본다면 '이런거까지 설명을 해줘야 하나' 싶은 상식 공유서들이 다시 나와줘야 하는 시점인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스피 = 저번 레터에 포함하려다가 분량 관계상 뺀 내용이 있었는데요. 1920년대쯤 미국에서 ‘사회 예절’에 대한 백과사전이 날개돋친듯 팔려서 1년동안 이 사전 집필자에게 당도한 질문이 2만개가 넘는 바람에 결국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150곳 신문사에 일제히 칼럼으로 연재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전에 대한 책이었어서, 옛날엔 이런 희안한 사전도 잘 팔렸구나(예절에 대한 사전이라니…)라고 생각하고 말았었는데 - 지난 레터를 쓰다보니, ‘예절’이라는 키워드에 아무래도 좀 더 관심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은 실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예절을 배울 일도 없고, 굳이 그런 것이 책이나 동영상 등으로 나올 일도 잘 없는 걸 보면, 여행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트렌드가 하나의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가치평가 빼고 드라이하게 말하자면) 뭔가 90년대 자기계발서는 확실히 직장 자기계발서에서 ‘상사 눈치보는법’ ‘매너’ 등의 내용이 많았다면, 오늘날 자기계발서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법’ ‘커리어 포트폴리오 쌓아서 이직하는 법’ 등 ‘개인 능력’에 초점이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기도 해서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새내기에게 일방적으로 상사 비위맞추는 법 같은 걸 가르치는 건 별로 썩 권장할만한 풍습(?)은 아니지만, 여튼 그 시대엔 좋으나 싫으나 서로 부대끼며 사회, 회사생활을 했던 것이겠죠.

👤밍 = 요즘 쓸모에 대해 고민하던 찰나(인문학의 쓸모, 책의 쓸모, 지식의 쓸모, ...) 인스피아에서 갑자기 "쓸모"를 다뤄주어서 깜짝 놀랐어요. 가끔 인스피아의 해찰과 저의 고뇌(?) 주제가 겹치거나 공명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짜릿합니다. 좋은 레터 오래 해주세요(하지만 힘들면 그냥 쉬세요)

⏩김스피 =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쓸모’라는 말은 참 여러모로 고민이 많아지는 표현같아요. 쓸모가 너무 없으면(?) 그것도 나름 문제지만, 쓸모를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실상 체 사이로 무언가 중요한 것들은 다 빠져나가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인스피아에선 실은 거의 모든 회차가 이 ‘쓸모’라는 것과의 샅바싸움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왕이면 쓸모없는 주제(중요하지만? 잘 주목하지 않았던 주제)를 다루고 싶은데, 또 너무 쓸모가 없으면 안되고…이런 고민을 계속 하고있습니다😂

👤벼리 = 오늘 레터에서 소개해 주신 <즐거운 버스 생활> 책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버스 기사의 생활과 버스의 생태계를 더 잘 이해하고 싶어질지도 몰라요. 검색해도 나오지 않을 것 같거든요. 아버지가 알려주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해외 유튜브 채널(Dad, how do I?)이 급격한 인기를 얻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넥타이를 매거나, 면도를 하는 방법 같이 자라면서 아버지가 알려줄 법한 것들을 담은 채널인데, 유튜버는 어릴 적에 아버지가 집을 나갔고 본인처럼 아버지 없이 자라는 사람들을 위해 시시콜콜한 how to 들을 담은 채널을 만들었다나봐요. 면도하는 법, 넥타이를 매는 법 같은 것들은 나름의 기술(?)을 요하는 것들이라 지식인에 검색하고, 정보성이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없는 정보일 수 있구나하는 생각에 실없는 리빙 포인트라는 건 없는 걸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유튜버 서준맘 콘텐츠 중에서 육아의 대상인 자녀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젊은 부모 얼굴을 담은 앵글로 만들어진 콘텐츠가 의외로 그시절 부모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줘서 댓글이 눈물바다가 된 이야기도 떠올라요. 내가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봐도 생각해 낼 수 없는 시절의 이야기들을요.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해찰하고 이해하려는 존재인 것 같아요. 아마 저도 오늘의 인스피아 덕분에 거칠게 핸들을 꺾어 재끼시는 우리 동네 버스 기사님의 모습을 보고 우리 동네 버스 기사님들은 하루 탕수가 많아서 스트레스가 많으신가 보군.. 하고 버스에 붙은 버스기사 임금 상승과 정부의 보조를 호소하는 낡은 포스터를 더 주의깊게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문헌에 써주신 것처럼 '우리 주변의 직업에 대해 알아보고 궁리해볼 수 있는 책'이 직업마다 있다면 좋겠다는 말에 정말 동의합니다. 이런 비슷한 류로 '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하는데요. 아무튼 00에서 00을 주제로 쓰여진 에세이들이 수록되었지만, 나도 좋아하는 00에 대해서 밤새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하고 또하는 느낌이라 가볍게 읽기 좋아합니다! 어떤 직업에 대해 끝도 없는 정보와 이야기들을 풀어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제가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 질 것 같아요. 그저 개인과 업을 수행하는 개인은 또 다른 모습이고, 이해하는 방법도 조금 다를 수 있으니까요.

⏩김스피 = 오오. 좋은 유튜브 추천 감사합니다. 예전에 직접 보진 못했었는데, 어디선가 채널 컨셉 소개하는 글은 봤던 것 같아요. 식사 예절을 가르쳐주고,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주고…이런 것들은 ‘수업’을 들을 순 없지만, 곁에있는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것이겠죠. 그러고보면 예전에 몬테소리가 고아원 아이들을 상대로 ‘손수건으로 소리안나게 코 푸는 법’을 알려줬더니, 아이들이 입을 떡벌리고는 극장에서처럼 열렬히 박수를 쳤다는 일화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고아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어른들을 보고 배우기 어려워 사소한 코푸는 법도 알기 어렵고요. 그런데 오늘날 꼭 이런 단순한 것들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부딪치며 살아가는 법, 혹은 조막조막한 상식들을 -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마저도 배우기 어려워지는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튼’ 시리즈는 저도 참 좋아해요😄 보통은 무언가 뾰족한 쓸모나 계기가 있어야 사람들이 어떤 글이나 책을 읽지만, ‘아무튼’이라는 말 자체가 - 이게 쓸모가 있든 없든 나는 아무튼 좋아!(혹은 관심이 있어) 그러니까 너랑 같이 수다를 떨고 싶어.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아서요. 해피 버스 데이 말고도, ‘해피 책방 데이’ ‘해피 병원 데이’(?) 같은 시리즈가 나오면 좋겠다는 망상을 해봅니다🤣

아, 그러고보면 오늘 레터(콘텐츠 모더레이터)는 지난 회차에 비해선 조금 무거운 내용이었습니다만, ‘해피 모더레이터 데이’ 같은 것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문득 들고…어쩌면 그렇게 해피하기만 할 수 없는 노동 조건을 서로 더 잘 이해하고 사회적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려는 시도도 필요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서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아예 없다면, 오멜라스의 아이 같은 -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더 늘어날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