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편지를 읽고 소중한 감상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 레터에 분량 문제로 짧게 소개하면서도 좋은 감상들을 충분히 함께 나누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해당 회차 레터에 관한 일부 의견들을 선정해 아카이빙해보고자 합니다.(이전 회차들에 대한 의견들도 조만간 아카이빙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잘 읽었다” 등의 짧은 감상 혹은 개인적인 지지의 말들도 항상 굉장히 감사하게 받아보고 있고 큰 힘이 됩니다.
-닉네임을 남겨주시지 않은 경우 ‘무명’으로 통일합니다.
👤seo = 제가 고등학교와 대학에 다니면서 했던 고민들을 다시 해찰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선생님들은 질문을 많이 하라고 하지만 막상 질문이 생겨서 찾아가면 책으로 충분히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이거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질문인데, ‘이거 물어보려고 온거야?‘ 하며 웃으셨거든요.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제가 질문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든 것 같아요. 궁금한 거나 모르는 게 있더라도이게 질문 거리도 되지 않으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더 커졌거든요. 챗GPT를 재미삼아 사용해본 적은 있는데 레터를 읽으며 평소 가졌던 의문과 함께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가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든 질문이 호기심으로 시작되는 것은 맞다(본인이 진짜 궁금해야 하니까).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은 유동적이다. 하나일수도, 여러개일수도 있고 심지어는 아예 없을 수도 혹은 이조차 나눌 수 없을 수도 있겠다.. 란 생각이 들었어요. ‘효율적인 질문’, ‘질문다운 질문’을 하지 못해 스스로 자괴감이 들었던 날도 있었는데, 마음이 좀 편해지기도 했어요!
⏩김스피 = 저번 회차를 쓰면서,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대체로 다양한 차원에서 ‘질문 좌절’을 겪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어요. 전 고등학생 때 국어 시험에서 저 혼자 오답을 주장했는데 선생님께 가져갔더니 “공부잘하는 애들은 다 맞았는데, 그럼 너만 맞고 걔네들이 다 틀린 거야?”라고 반문하셔서 할 말이 없어졌죠. 이런 식으로 ‘질문 대신 정답’을 추구해온 삶의 역사(!)가 너무 길다보니 이를 씻어내는데도 참 어려움을 느낍니다. 우리 모두 ‘조금 편하게’ 서로에게 질문을 주고 받으며, 즐거운 지적 경험을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키키 = 저번에 지루함에 관한 철학 책(고쿠분 고이치로)을 다뤄 주신 편 재밌게 봤는데요. 김대식 교수님의 chatgpt와의 대화책에 관한 내용을 다룬 이번 레터도 참 좋았습니다. 저는 아직 책을 읽어보지 못했는데, 질문은 김대식 교수님께서 만드셨다고 한들, 응답으로 수록된 내용은 chatgpt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면, chatgpt몫의 저작권과 인세는 인정해주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또한 이런 식의 인공지능을 만드는 데는 수많은 인간들이 어딘가에 남긴 언어가 수집되고, 데이터 레이블링 등의 노동이 들어갔을 테고요. 책을 읽기 전에 쓰는 질문이라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소외와 가속(하르트무트 로자 저, 김태희 역, 앨피)이라는 책을 아시나요? 모든 것이 너무 과잉이고, 빨리 변하며, 그만큼 많은 것을 소화해야한다는 압박을 느끼지만 정작 제대로 알거나 하는 건 별로 없어서 체한 기분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스피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김스피 = ‘챗GPT 몫의 인세’라는 아이디어가 흥미롭네요! 그런데 책의 뒷면을 열어보니 ‘지은이=김대식·챗GPT’이지만 , 저작권 관련해서는 ‘ⓒ김대식’이라고 쓰여있네요.(어찌보면 현시점에선 당연한(?) 것이겠지만요)
말씀하신대로 라벨링 노동, 강화학습 노동 등의 문제도 있고 데이터 저작권의 문제도 있어서 ‘챗봇 생산 텍스트’에서 저자의 온당한 몫을 정의하는 것은 꽤 도전적인 과제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오늘 김성우 선생님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챗gpt의 저자성’과 관련해서도 짧게 다루었으니 좋은 해찰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책 추천 감사드려요! 제목과 추천해주시는 코멘트만 보아도 매우 흥미로울 것 같은 책입니다 😃
👤포근콩 = 최근에 KBS에서 방영한 최초의 질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질문의 중요성에 대해 뒤늦게나마 깨달음을 얻었는데 이번 주제도 더 다양하게 깊이를 더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과거 주입식으로 그저 미리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정답만 잘 기억하고 외우면 된다는 식으로 사람을 키웠습니다. 질문이 많으면 '말많으면 공산당이다'라는 식으로 개인의 창의성을 무시했었지요. 제가 60이 넘어 일종의 기술고문으로 지원을 하고 있는 작은 기업에서도 매 주 개인별 그룹별로 의견을 공유하고 진행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질문도 없이 그저 묻는 것에만 대답하는 수준입니다. 대부분 그런 배경에는 기업이 그저 예전에 하던대로 종업원들의 시간만 쥐어짜고 일정만 따지다 보니 아무런 의욕도 없다고만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결국 어느 수준 이상의 신제품이 나올 수 없는데 이에 대한 기술적 투자는 없이 예전 문재인 정부의 노동친화정책만 비난하다가 이제 노동시간을 늘릴 수 있다고 하니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기분입니다. 기업에서 신제품을 개발할 때도 어떻게하면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아 시간을 줄이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내려면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일을 해야하는데 이는 질문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를 계속 돌아봐야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김스피 = ‘말많으면 공산당’이라는 문장이, 정말 과거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표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수십년이 지난 현재도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대체로 똑같다는 것인 것 같습니다. 현재는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요. 이를 위해선 어차피 질문을 누르고 무조건 어떤 상황에든 ‘정답’을 고르는 게 중요하니까요. 포근콩님이 말씀하신대로, 기업에서 신제품을 개발하는 등의 과정에서 생산성과 창의성을 제고하기 위해선 반드시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명 = 글쓰기 강사입니다. 글쓰기가 어렵다는 사람들이 무엇이 어려운지, 그것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지 왜 질문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차에 반가운 글이었습니다. 물론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닙니다. 질문을 할 만큼 생각하지 않거나 심적 여유가 없고, 질문이 곧 무지가 드러나는 상황이라는 두려움도 있고, 질문의 수준에 대한 으로 인한 눈치 보기 심리도 있지요.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해하는 게 먼저일 테고 어떤 질문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 사람의 질문에 모두가 참여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걸 느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김스피 = 지난 회차에서 인용했던 신지영 교수의 칼럼을 처음 읽으면서, 가장 깜짝 놀랐던 부분은 보통 ‘질문’에 대해 얘기할 때 ‘왜 질문을 안하냐?(학생 side)’라는 부분에 초점이 가있기 마련인데 거꾸로 ‘질문이 안전한 교실/사회를 만들어야 한다(선생님 등 관리자 side)’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질문에 모두가 참여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말씀을 들으니 선생님께 배우는 학생들은 참 즐겁겠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