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편지를 읽고 소중한 감상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 레터에 분량 문제로 짧게 소개하면서도 좋은 감상들을 충분히 함께 나누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해당 회차 레터에 관한 일부 의견들을 선정해 아카이빙해보고자 합니다.(이전 회차들에 대한 의견들도 조만간 아카이빙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잘 읽었다” 등의 짧은 감상 혹은 개인적인 지지의 말들도 항상 굉장히 감사하게 받아보고 있고 큰 힘이 됩니다.

-닉네임을 남겨주시지 않은 경우 ‘무명’으로 통일합니다.


👤블루베리 =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환경, 교육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호주에서 '다문화 수업'을 주제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는 데 목적을 가진다고 하더라고요. 저 아이의 뿌리를 경험하고, 나와 다른 점이 있구나를 받아들이게 말이죠. 한국도 전보단 유연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나와 다른 것에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그런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그걸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나의 세상에선 그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어서, 다른 것을 바라보지 못하는 그런 마음이요.

⏩김스피 =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는’이라는 말이 참 좋네요. 다른 삶을 꼭 ‘진심으로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한번 ‘경험’이라도 해보는 것만으로 생각이 크게 바뀌는 것 같아요. 예전에 앨리 러셀 혹실드의 책(<가족은 잘 지내나요?>)에서 소개된 - 유치원부터 8학년 학생까지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Roots of Empathy(공식홈페이지)’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인상깊게 읽었었는데요. 갓난 아기를 안은 부모가 총 27회 교실을 정기 방문해서 학생들로 하여금 아기의 감정을 인식해보도록 하는 비영리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한정된 공감의 만남이더라도 이런 기회는 많은 아이들이 자기의 공감 지도를 고쳐 그릴 수 있게 이끌 수 있다.”

👤디스하모니 = 아직 가보지 못한 세계로의 호기심이란 부분에서 동일한 호기심을 느끼면서도. 정말 가보지 못한 것인가. 가볼 수 없는것인가 싶기도 해요. 점점 관계마저 이해관계를 논할만큼 거래화되는 느낌 속에서 그들의 속사정과 어쩌다 저런(나쁘다는건 아님)가치관을 갖게되고 맹신하는지 너무 궁금하지만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데 공감하는 태도를 유지하기가 너무 어렵더군요. 표면적 유사를 통해 잠입에 성공하였더라도 제가 기대하는 사정이 없다면 그 또한 절망적이기에 강건너 불 구경을 하게 되는듯 합니다. 사정이 있겠지 하며...

⏩김스피 = 타인의 고통을 즐거움으로 느끼는 행동을 일컫는 단어까지 있을 정도니 확실히 ‘쌤통이다’와 ‘연대’ 간의 차이는 모호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대하는 사정’이라고 한다면, 역시 기자의 입장에선 ‘얘기가 될만한 사연(사례)’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제 경우엔 신문에 쓰진 못했던 꼬투리같은 이야기들이 항상 마음을 더 흔들었던 것 같기도 해요. 설령 내가 기대하는 것이 없을지라도 일단 성실하게 ‘구경’해보려는 태도를 견지해가려 합니다.

👤효목 =얼마 전에 어디선가 읽은 내용인데, 남성우월주의자와 여성우월주의자에게 반대의 성별로 바꾸어 얼마간 생활하게 했답니다. 그렇게 성별을 바꾸어 사회생활하면서 받는 사회적 대우 등을 체험하다 보니 본래 성별로 돌아가서는 각자 그 우월주의 인식이 다소 수그러들었다고 하더이다. 역지사지 정신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디선가 읽었는데, 이게 기억이 안 나네요 ㅠㅠㅠㅠ)

⏩김스피 = 확실히 잠깐의 ‘경험’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실제 ‘나라는 정체성’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소통하거나 행동할 기회는 많지 않으니까요!

👤무명 = 안녕하세요. 한 달 동안 인스피아를 정말 기다려왔어요. 오랜만에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글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타인의 삶을 구경하기'라는 제목을 처음 읽었을 때, 박완서 선생님의 단편인 <도둑맞은 가난>이 떠올랐습니다. 이 단편에서 남자는 특권층으로 한 번쯤 '가난한 자의 삶'을 경험해보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주인공인 나와 함께 단칸방에서 살게 됩니다. 이 단편의 의미는 마지막 부분, 남자가 자신의 정체를 밝힐 때, '나'와 자신과의 관계를 철저히 타자화하며 시혜적인 태도로 '나'의 삶을 평가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저는 강 건너 불구경하기라는 당사자들에게는 단편 속 '남자'처럼 느껴질 행위가 용인되거나 독려될만한 것인지는 아직도 의문이 듭니다. 무관심 보다 관심이 더 낫다는 지점은 충분히 동의하지만, 무관심보다 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취약계층으로 위장하여 관음증적으로 그들을 살피는 일이 현재 혐오와 조롱이 넘실대는 시대에까지 필요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응시'와 '구경'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기심에 기반한 구경보다는 조금은 무거워도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끼는 응시가 더 알맞은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타자인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며 다가가는 응시의 태도가 필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김스피 = 말씀해주신 것처럼 <도둑맞은 가난>의 사례는 가난(다른 세계)을 타자화할 때의 문제점을 잘 드러내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일상에서의 ‘마주침’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갈등을 낳는 계기가 되는 경우도 많겠죠.

그럼에도 점차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직접 만나기보다는 서로 아예 현실에서 마주칠 기회조차 없어지는’ 세계에서, 그나마 (좋거나 나빠질) 기회라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로 다른 집단 간의 ‘마주침’과 교류가 사라질 때, 더 취약한 곳으로 내몰리는 것은 대체로 약자 쪽입니다.

👤김한야 = 항상 고민하며 읽게 되는 레터였고 이번에도 그러하였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적당한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사실 제 일은 저보다 더 빈곤한 집단과 맞닿아 있는데요, 그러면서 그들의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어느 방향의 태도를 선택하든 죄책감이 뒤따르고요. 그런 면에서 이번 레터를 읽으며 응원과 격려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김스피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길이 ‘100점짜리’가 아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는 것보다는, 조금 부족할 수 있는 시도라도 역시 해보는 쪽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