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편지를 읽고 소중한 감상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 레터에 분량 문제로 짧게 소개하면서도 좋은 감상들을 충분히 함께 나누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해당 회차 레터에 관한 일부 의견들을 선정해 아카이빙해보고자 합니다.(이전 회차들에 대한 의견들도 조만간 아카이빙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잘 읽었다” 등의 짧은 감상 혹은 개인적인 지지의 말들도 항상 굉장히 감사하게 받아보고 있고 큰 힘이 됩니다.

-닉네임을 남겨주시지 않은 경우 ‘무명’으로 통일합니다.


👤경향읽는햄토리 = 뜨끔하기도 했고, 가만히 앉아서 10분정도 생각하게 만드는 주제였어요. 전 97년생인데요, 고등학생때부터 금수저 특유의 여유로움을 동경하고 흉내내곤 했어요. 흙수저는 속으로 무시했고요. 왜그랬을까 생각해봤는데, 우리 세대가 '부모보다 못 사는 첫 번째 세대'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중산층이 점점 얇아지고 양극화는 심해지잖아요. 아래로 추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애써 외면하려고 가난한 사람들의 '본성'을 추론해서 깎아내리는 것 아닐까요. 나와는 아예 다른 사람이라는 논리를 중산층 그룹 안에서 공유하면서 소속감을 쌓으려는 것 아니었을지요. 금수저에 대한 동경도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불안으로 생긴 거 같아요. 나보다 조금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질투를 '그래봤자 진짜 금수저와는 하늘과 땅 차이야'라고 깎아내리려 했던 건 아닐지..

⏩김스피 = 보내주신 글을 읽으며 여러모로 저도 생각이 많아집니다. ‘(가난을 혐오함으로써) 아래로 추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애써 외면한다’는 부분에 대해 - 저도 지난 레터를 준비하면서 느꼈던 부분이었는데요. 가난을 혐오하는 걸 통해 가난의 책임을 개인에 돌릴 뿐 아니라, 나와는 ‘다른 세계의 얘기’라는 안도감을 얻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금수저 선망’에 대해서는 (오늘 레터에 제가 구구절절 썼듯😢) 지난 레터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었는데, 마지막에 쓰신 구절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좋은 해찰을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금붕어금귤 = 얼마 전 신림 지역 침수로 반지하에 살던 사람들이 죽었었잖아요. 저도 한동안 반지하에서 살아봤는데, 마음이 싱숭생숭하더라고요. 그런데 최근 다시 이사를 계획하면서 반지하방으로 다시 눈이 가더군요. 저렴하면서도 취준하러 서울 올라온 백수 동생이랑 같이 살 수 있는 넓은 방을 찾으려다 보니 서울에서는 반지하가 그나마 저렴하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이번 레터를 읽으니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저는 그래도 모아놓은 자산이 조금 있으니까 좀 낫지만.. 몇 년 전을 생각하면.. 묘합니다.

⏩김스피 = 저도 자취하기 위해 처음 집을 구할 때 금귤님과 비슷한 고민을 했었는데요. 적은 돈으로 ‘괜찮은’ 집을 구하려니 어찌나 어렵던지요. 결국 뒤로 갈수록 ‘어떤 좋은 집을 고를까’의 고민이 아니라 - 많은 단점 중에 어떤 단점을 고를까, 내가 어디까지 참아낼 수 있을까(?)의 문제가 되었던 경험이 있습니다.(예를 들면 다리를 튼튼하게 해줄 경사 60도의 언덕길, 원룸같은 투룸, 뛰어서 10분짜리 ‘역세권’ 등…)

지난 레터를 쓸 때 많은 고민을 하며 썼는데, 그 중에서도 ‘어떤 선택이 최선이 아닌 것처럼 보여도 적어도 당사자에겐 최선일 수 있다’는 점을 계속 염두에 두었습니다. 이 때문에 어떤 선택지가 ‘나쁘다’고 그것 자체를 비난하거나, 선택지 자체를 없애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없는 것이죠.(<차브>에서 오언 존스도 ‘선택’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선택의 맥락’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런 부분이 이번 폭우-반지하 문제와 연결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레터에서도 폭우와 반지하 관련 글들을 몇개 더 읽을만한 글로 링크해보았으니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무명 = 구구절절 공감하며, 요즘 제 암울함을 이해받는 느낌이 들어 감사했어요. 전 요즘 정말로 무섭습니다.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의 재투쟁, 하이트진로 하청 노동자들의 본사 점거와 본사의 소송... 정말로 하청 노동자들이 돈을 더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수년 전에 비해 깎인 생존비를 더 이상 빼앗아가지 말라고 절박하게 요구하는데도 그들의 목숨을 건 투쟁이 잊히기만 하는 것 같아요. 이 다음 차례는 정말 제가 아닐까요... 이 정부는, 언론은 왜 아무도 노동자들의 권리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일까요. 저는 정말 깊은 슬픔 속에 있는데, 이걸 주변에 나누기 어렵더라고요. 다들 어두워지고 싶지는 않으니까... 정말 너무 잘못되었다고 느끼기만 할 뿐 무력한 저 자신을 탓하게 될 때가 많아져요. 쿠팡 노동자들이 투쟁 때 아이스 커피 마신 것도, 대낮에 술처먹은 것으로 보도하는 언론들을 보면 정말 슬퍼요. 그 기자들은 정말 몰랐을까?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서도 정말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었을까? 그렇게 기다렸다는 듯 노동자들의 폭력성이나 비도덕성을 강조하는 기사를 쏟아내는 걸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 현장에서 진실을 온몸으로 발화하는 사람이 있어도, 강력한 거짓이 무력한 진실을 덮어버린다는 것에요. 그래도 오늘 레터를 보게 되어 작은 희망을 발견합니다. 소개해 주신 책들을 열심히 봐야죠. 명절 상여금도 없는 기간제 노동자는 오늘 이렇게 새 힘을 얻습니다.

⏩김스피 = 감상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내주신 이야기를 읽다보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오늘 레터(8.31일자)에서도 썼지만, 사실 가난 혐오(와 ‘금수저 선망’)가 너무나도 만연한 문제인데 제가 이와 관련된 책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눈 앞에 있는, 정말 중요한 문제에 대해 정작 누구도 크게 주목하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처음으로 -레터를 쓰면서 적당한 읽을거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한 이야기에 대해 적어보았습니다.

지난 레터는 결국 이것이 우리들 모두의 문제라는 것으로 끝맺었었는데요. 여기서 실제로 ‘희망’이 생겨날 수 있도록 저 또한 앞으로도 더 노력하고 궁리해보려 합니다.

👤귀를뜨고눈을열고 = 가난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는 많은 부분에 대해서 짚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네요. 대부분 사람들은 가난=돈이 없다로 치부하기도 하는데, 가난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난의 원인은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인거죠. 물질적 가난에서 오는 결핍만큼이나 정신적 가난이 주는 고통도 크니까요. 요새 너무 돈에 몰입하다보니 가난한 삶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해요

⏩김스피 = ‘가난의 원인이 주관식’이라거나 ‘정신적 가난이 주는 고통’이라는 말씀을 곱씹게 됩니다. 비록 제가 지난 레터에서 빈부격차의 원인이라든지 거대한 구조적 문제(!)를 짚기보다는, ‘가난 혐오’와 ‘금수저 선망’에 초점을 맞추어보았었는데요. 그럼에도 다양한 의견을 보내주셨다는 것 자체가, 평소에 모두 많은 궁리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생각을 정리하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니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