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편지를 읽고 소중한 감상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 레터에 분량 문제로 짧게 소개하면서도 좋은 감상들을 충분히 함께 나누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해당 회차 레터에 관한 일부 의견들을 선정해 아카이빙해보고자 합니다.(이전 회차들에 대한 의견들도 조만간 아카이빙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잘 읽었다” 등의 짧은 감상 혹은 개인적인 지지의 말들도 항상 굉장히 감사하게 받아보고 있고 큰 힘이 됩니다.
-닉네임을 남겨주시지 않은 경우 ‘무명’으로 통일합니다.
👤리호 = 저는 완벽한 답을 고르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거면 시작조차 하지말자'고 합리화를 합니다. 사실 실패하기 싫다는 마음이 깔려있는 것 같아요. 잘못된 선택을 하면 전부 제가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그게 두려워서 도전을 포기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아요.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성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넷플릭스와 함께 행복한 주말을 보내고 싶었는데 재미없는 영화를 선택하게되면 기분이 급격하게 우울해질 때도 있었어요. <모든 것을 붙잡으려고 초조해하기보다는 많은 것들이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두고 정말 내 마음에 닿는 것을 즐겨보려고 하는 해찰.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그런 생각과 태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부분을 읽고 시선을 좀 달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미없는 영화에도 내가 좋아하는 구석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싶고, 영화 하나 잘못 골랐다고 해서 주말을 우울하게 보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한 선택이 저를 불행하게 만들까봐 두려웠는데 '좋은 선택'이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줄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걸 깨닫고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덕분에 비가 오는데도 산뜻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김스피 = 넷플릭스 재미없는 영화 선택했을 때의 그 슬픔과 절망 완전 공감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영화를 보는 거엔 아직도 거부감이 있어요. 그날 레터 보내고 나서 그 다음에 본 영화도 ‘흥 이번에야말로 끝까지 보겠어’라고 결심하고 봤는데, 중간에 너무 재미가 없어진 나머지 평점 검색을 했고(…) 그렇게 또 어정쩡하게 중간에 끊고 말았습니다.
옛날에 한동안 영상자료원에서 고전 영화를 많이 봤었는데, 그중에 진짜 최악인 영화가 있었어요. 제목만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영화인데다가 제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여서 달려가서 봤는데, 알고보니 제가 싫어하는 버튼을 마구 누르는 영화였던 거예요. 하필 러닝타임은 거의 3시간이고 영화관 중간에 앉아서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꾸역꾸역 끝까지 앉아있다가 모처럼의 주말 저녁을 통으로 날리고 우울해져서 감자튀김 하나 사서 터벅터벅 걸어왔는데요. 돌이켜보면 그 ‘고문같던’ 시간 조차도 어쩌면 그 영화에 얽힌 경험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영화에서 내가 불편하게 느꼈던 부분들이 무엇인지, 내가 왜 싫어했는지에 대해 입 속 사탕 굴리듯 야금야금 궁리하는 과정이 오히려 내가 좋아할만한 요소들로만 꾸려진 명작을 ‘꿀떡’ 편하게 삼키는 것보다 더 내겐 나은 경험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확실히 책은 중간에 기대에 못미치면 빨리 후루룩 덮어버릴 수 있는데, 영화는 그게 잘 안된다는 점이 제게 있어선 영화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는 경험이 늘면서 그 장점이 사라지고 있는 부분은 아쉽지만요.
👤무명 = <‘선택 불안’은 우리를 잠식한다>는 목차의 내용이 특히 좋았습니다. 문장 하나하나에 깊이 공감하며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마침 며칠 전 이용하고 있던 구독, 큐레이션 서비스를 줄여보았는데요. 쓸데없는 지출을 줄인다는 이유가 컸지만 오늘 인스피아를 보고 나니, 이런 관점에서도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OTT 서비스들, 잘 읽히지 않던 뉴스레터들의 구독을 해지했지만 저는 계속 구독, 큐레이션 서비스를 애용할 것 같습니다. 인스피아처럼 애용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여전히 많으니까요. 하지만 오늘 알게된 '상호수동성'을 떠올리며 무언가 놓칠지언정 나의 선택에 기뻐하고 실망하는 경험을 놓치진 말자는 다짐을 해봅니다.
⏩김스피 = 제가 레터를 쓰면서 생각했던 부분들을 정말 콕콕 짚어 말씀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완벽하게 뭔가 답을 알고, 이를 실행하고 있어서 쓴 회차라기보다는 저 역시 같은 상황에서 비슷한 투쟁(?)을 하고 있기에 저도 배우면서 고민하면서 쓴 회차였습니다.
레터 내용에 적진 못했지만, 예전에 한동안 트위터 등 SNS에서 “실패도 그만한 여력이 있어야 한다”라는 글이 많은 공감을 얻은 적이 있었는데요. 요는 돈이 없으면 20만원짜리 오마카세를 평점 안보고 훌쩍 갈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들은 ‘실패할 기회’조차 잃고 있다라는 논지였는데, 한동안 그 글에 굉장히 공감을 하고 있던 차에 최근엔 좀 갸웃하더라고요. 그런 생각 역시도 어쩌면 최고의, 검증된 경험만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산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부모님 모시고 가는 20만원짜리 오마카세라면 혹시 주방장이 호통치는 사람인지, 벌레가 등장하는지 등에 대해 조금 신경이 쓰이겠지만, 1년에 한번 먹을까 말까한 그 이벤트로 일상의 모든 선택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룰루랄라 = '선택'과 관한 생각이 많았는데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저는 별생각 없이 결정한 선택 때문에 삶을 많이 돌아왔다고 생각해서 성인이 된 후에는 더욱 신중히 선택 하려고 노력했어요. 대학생인 지금은 진로, 분야 등 예전보다 더 어렵고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해요. 짧지 않은 시간을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다가 요즘은 선택에 옳고 그름이 있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요.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가져다주는 경험을 하면서 무언가를 배우는 게 인생이라고, 나는 완벽히 옳은 선택을 할 수 없다고 저를 위로하면서요. 이번 뉴스레터를 읽으면서 어쩌면 내가 지금 복에 겨운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는 선택지조차 없는 삶을 살고 있을 테니까요. 그래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선택 앞에서 김스피님은 어떤 기준으로 결정을 내렸나요?
⏩김스피 = 제 경우는 (레터에도 썼지만) 선택을 굉장히 못하는 편입니다. 지금도 계속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고요. 현재의 직업을 선택한 계기도 ‘기자’라는 직업에 굉장히 투철한 의식을 느껴서라기보다는 글 쓰면서 돈 버는 직업이 뭐 있지? 내 학점으로 어딜 가지?(…👤)하다가 얼결에 선택하게 된 느낌도 없잖고요.
그런데 우치다 다쓰루의 글 중에 ‘하품 수련’이라는 재밌는 말이 있어요.(우치다 다쓰루는 일본의 유명한 연구자이자 합기도 무술가입니다) 합기도를 할 때 굉장히 투철한 목적 의식을 갖고 하는 사람보다도 ****‘하품하듯’ ‘친구한테 이끌려’ 온 사람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다는 것이죠. 어쩌면 어떤 선택을 할 때 굉장한 신념(그 직업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선택을 한다는 건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 신념이 ‘사실이 아닌걸로’ 드러났을 때 그만큼 크게 상처받고 깨지기 쉽다는 의미인 것 같기도 해요. 반대로 하품하듯 그냥 헐렁하게 온 사람이라면 기대도 없으니까 상황이 어찌됐든 어찌저찌 구물구물 계속 해갈 수 있는 것이겠죠.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의외의 즐거움이 ‘뿅’ 튀어나오면 어린아이처럼 힘껏 즐거워할 수도 있고요.
요는 제 경우에도 중요한 선택을 할 때 하품하듯…해왔다는 결론인 것 같은데요😖 어쩌면 [선택]보다도 [기회]에 어떻게 ‘대응’해왔냐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합니다. ’선택’은 오롯이 개인에 속한 개념인 반면, ‘기회’는 맥락 속에서 내 ‘선택’과 무관하게 다가온 것이라는 점에서 다른 차원의 문제죠. 마치 핀볼 게임 속 공이 이리저리 얻어맞으면서 움직이는 것처럼요. 그렇다고 해서 본인의 마음이나 행동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라기보단, 그 안에서 어떻게든 내게 맞는 방식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려는 마음이 어쩌면 ‘선택’보다도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인스피아도 제가 ‘뼈기자’라거나 ‘진짜 연구자’였으면 이런 글을 쓸 생각은 못(안)했을 것 같은데요. 이런 글이야말로 정말로 하품하듯 쓴 글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다행히 회사에서 아직 이런 애매한 글을 쓸 틈새를 허용해주고 있습니다)
어쩌다보니 조금 선문답같은 얘기가 되어버렸는데요. 이번주(7.20)에 보낸 레터에서 소개한 책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에 마침 진로 선택과 관련된 이런저런 재미난 이야기들이 나오기 때문에(esp 6~7챕터)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imaginers = ui/'ux 분야로 분류하면 'los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사용자가 설계된 동선을 이탈하는 경우인데 이를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쓰이는 개념입니다. 실무적으로 일반적인 용어는 아니고 2000년 후반 논문 등에서 언급됐던 개념이긴 한데 이번 주제와 맞물려 많은 해찰할 거리가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